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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이야기, 『K-POP 이노베이션』

열다섯 번째 이야기, 『K-POP 이노베이션』

『K-POP 이노베이션: 세상을 흔든 한국형 혁신의 미래』 이장우 지음, 21세기북스, 2020.

트롯 열풍이 한국을 뜨겁게 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열풍을 넘어선 태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K-POP이다. 무엇이 K-POP을 우뚝 서게 했을까? 생각해보니 1등 하는 제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반도체이다. 

그런데 반도체와 음악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산업이다. 가장 먼저 규모 측면에서 엄청나게 다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투입되는 중후 장대형 산업으로, 2018년 이후 단일 수출 품목으로는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으면서 한국 경제 전체 수출액에서 무려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이에 비해 K팝 음악 산업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다. 음악 산업이 본질적으로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세계 음악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산업으로서 가장 발달한 미국도, 음악에 대한 소비액은 GDP의 0.1% 수준에 불과하며 고용 역시 전체의 0.2%가 안 되는 정도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평균 음악 소비액은 이보다 작아서 세계 GDP 대비 0.06% 수준이다. 즉 1만 원을 소비하면 6원 정도 음악에 소비하고 있다.  

또 다른 점은 음악이 소비자의 감정과 정서를 기반으로 사람 간 정서적 유대를 일으키는 것에 비해, 반도체는 실리콘이라는 물질과 그 위에서 작동하는 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적인 힘과 행복의 원천이 되면서 개인이나 지역 사회에 큰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에 비해 반도체는 정보를 기억하고 가공함으로써 기계를 지능화하고 인간의 논리적 작업을 지원한다. 특히 반도체는 디지털화의 첨병으로 산업과 사회를 디지털 기반으로 바꾸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다.

그러나 음악은 오히려 디지털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대상이다. 예를 들면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등의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스트리밍에 의한 음악 소비가 대폭 증가함으로써 음반 판매의 시대가 이미 저물었고 이제는 서비스 또는 임대 사업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이같이 서로 다른 두 산업에서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적지 않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디지털화의 핵심 부품으로 제조업을 대표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 감성에 영향을 끼치는 대표 문화 산업이지만, 두 산업에서의 혁신 과정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세계 1등 제품인 K-pop과 반도체는 어떤 성공코드를 공유하고 있을까? 

이장우 전(前)한국경영학회 회장은 [K-POP 이노베이션: 세상을 흔든 한국형 혁신의 미래](이장우 지음, 21세기북스, 2020)에서 두 산업의 성공코드를 혁신이라고 이야기하며 5가지 공통점을 이야기한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가) 1/5 생산 공정 기술의 혁신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와 K팝 산업은 모두 생산 공정의 기술을 혁신해 경쟁력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저렴한 원가 구조를 기반으로 국제적 가치 사슬의 분업 체계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생산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혁신시킴으로써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1위의 경쟁력을 획득했다. 반도체는 그 설계가 매우 복잡하고 고도의 창의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구조 자체는 규소 위에 미세한 소자와 금속을 겹겹이 쌓아 놓은 물질이다 보니 생산 공정은 간단하다. 노광(Lithography), 식각(Etch), 이온 주입, 산화, 세척, 증착 등의 과정을 조합하며 계속 반복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K팝 산업도 이와 유사하게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담고 있는 콘텐츠는 매우 복잡하고 창의적이어야 하지만 캐스팅, 트레이닝, 프로듀싱, 매니지먼트, 마케팅 등의 활동으로 구성된 아이돌 생산 시스템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반도체와 K팝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과정의 생산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 2/5 수직적 통합 전략

두 산업은 핵심 기능들을 통합하는 ‘수직적 통합’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시장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가치를 담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려는 방편이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신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에 출시하는 전 과정, 즉 개발⟶검증⟶유통을 완벽하게 수직 계열화하고 주요 개발 기능을 내재화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는 K팝 기업들이 토털 매니지먼트 전략으로 아이돌 캐스팅, 트레이닝, 프로듀싱, 마케팅 등으로 이어지는 전 생산 과정을 한 기업 조직 안에 통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 3/5 비즈니스 모델의 재정의

두 산업 모두 혁신의 산출물에 대한 정의를 기존과 다르게 했다. 반도체의 경우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첨단 기술의 제품을 값싸게 제공함으로써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첨단 기술의 기준을 고성능과 고신뢰성에 두지 않았다. 대신 사용자가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을 기준으로 함으로써 첨단 기술의 정의를 바꿔버렸다.

이와 유사하게 K팝 혁신가들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음악이라는 문화상품의 정의를 바꾸었다. 기존에는 음반으로 구현된 ‘음악’이 핵심 상품이었다면, K팝에서는 음악을 실연하는 아이돌을 수익 창출의 핵심으로 재정의했다. 그리고는 다양한 아이돌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라) 4/5 승자 독식의 시장 구조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승자 독식 시장 구조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고위험·고수익의 사업 특성을 갖는다.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은 그 심한 정도가 매우 살벌한 수준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이 1위를 점한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20개가 넘던 제조사들이 지난 20년 사이에 전부 문을 닫고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 단 3개만이 남았다. 이들이 벌인 경쟁상황은 1메가비트 메모리의 예로 보면 잘 알 수 있다.

메모리 칩 하나 가격이 1980년 약 6.5달러였으나 2015년에는 무려 1,500배가 하락해 0.0042달러가 되었다. 이렇듯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만이 최고의 성능과 가장 싼 원가를 가질 수 있는 경쟁 구조를 나타내며 살벌한 경쟁 상황을 연출해왔다.

음악 산업도 승자 독식의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상위 1%의 아티스트들이 가져간 공연 수익은 1982년 26%에서 현재는 60% 정도로서 지난 30년 동안 크게 늘었다. 현재는 상위 5% 아티스트들이 전체 공연 수입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특히 상위 0.1%의 슈퍼스타가 앨범 판매와 디지털 스트리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2017년 기준).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스트리밍의 보급으로 국가 간 장벽이 무너지고 세계 음악 시장이 동질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 5/5 기술 학습의 조건

산업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기업에 달려 있다. 기업이 기술 능력을 축적해 혁신을 시도해야 기술 변화가 일어나고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위 두 산업은 기술은 전혀 다르지만, 기술을 학습하고 축적하는 과정은 패턴이 유사하다.

기술 능력이란 기업이 기존의 지식을 소화하는 능력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능력 모두를 포함한다. 이때 기업은 글자나 문서로 정리한 명시적 지식뿐 아니라 암묵적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핵심적 기술 능력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을 효율적으로 학습하려면 기존 지식의 수준과 기술 학습을 위한 노력의 강도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반도체와 K팝은 이 두 가지 요소가 상대적으로 높다.

두 산업의 경우 기존 지식의 수준이 1980년대 창의적 모방이 시대를 거치면서 일정 수준에 도달했으며 혁신가들의 주도로 노력의 강도가 매우 높았다. 따라서 혁신 활동이 급증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중반 반도체 산업에 처음 진출한 이래로 창의적 모방의 혁신 활동을 통해 한국 경제는 어느 정도 기술적 기반을 쌓고 있었으며, 미국 대학에서 교육받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상당수 존재했다.

- 이와 유사하게 한국 음악 산업도 앞에서 설명했듯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신세대 댄스 음악의 황금기를 보내면서 기술적 기반과 음악인들의 열정이 매우 높았다.

 

(바) 결론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 같은 다섯 가지 공통점으로 인해 반도체와 K팝 산업은 서로 다른 특성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 이후 혁신 과정에서 유사한 패턴을 나타냈다. 즉 반도체와 K팝은 ‘신지식 창조’라는 2세대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한국 경제가 퍼스트 무버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 결과 이 두 산업은 2018년 한국 경제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8년 대한민국의 단일 수출 품목으로서는 최초로 1,000억 달러의 기록을 세웠으며,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로도 20%가 넘어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한때 잿더미에서 어떠한 산업 기반도 없이 시작했던 나라를 첨단 공업국으로 바꿔놓은 대표 제품이 반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유사하게 K팝 산업도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과 2019년 BTS와 슈퍼M이 각각 발표한 3장의 앨범과 1장의 앨범이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다른 K팝 아이돌 음악들이 영미권을 포함해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국가 브랜드를 이렇게 드높인 것은 정부 수립 이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이 가전 산업을 제치고 드디어 13위의 대표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항상 미국과 일본의 문화상품과 그들의 저력을 부러워했던 나라를 문화 강대국으로 바꿔놓은 대표 상품이 K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는 ‘신지식 창조’의 혁신을 이끄는 3대 주체를 보유하게 되었다. 첫 번째 세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선도로 상징되는 제조 대기업과 두 번째 IT와 인터넷 산업을 이끌고 있는 벤처기업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문화 초강대국으로 이미지 메이킹하고 있는 K팝‧영화‧드라마 등 문화 기업들이 세 번째 혁신 주체라는 사실은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제조 대기업‧IT 벤처‧소프트 파워의 문화 기업 등 3대 혁신 주체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K팝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이노베이션을 파악하고, K팝의 성공과 미래 전망을 혁신 이론의 관점에서 보고 싶을 때,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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