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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교수칼럼

안중호 명예교수의 회고 제2화

안중호 명예교수의 회고 제2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불편한 진실

우리 지방행정 조직체계를 잠깐 살펴보자. 시, 도 →구, 군 →읍, 면, 동의 낯익은 계층구조, 가까이는 조선시대, 멀리는 고려시대에도 명칭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지 거의 그대로가 아닌가? 조선8도가 있고, 그중 하나인 서울특별시에는 25개 구가 있다, 각 구의 하부 조직으로 동사무소(지금은 주민센터라고 불린다)가 수십 개씩 있다. 동네방네 동사무소다. 행정전산망이 가동되기 전의 동사무소의 기능과 역할이 오늘날에는 많이 바뀌었을 터이고,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1회에서 언급한 국가행정전선망 프로젝트는 성공작이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조직을 개폐(改廢)하지 않으면서, 다시 말하면, 바뀐 환경, 다가올 미래 등을 반영한 국가발전 방향, 또 이를 성취하기 위한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재설정함 없이, 지금 일하고 있는 방식을 바탕으로 하는 정보화는 실패작이라는 말이다. 통탄할 일은 우리는 국가조직 혁신의 절호의 기회를 무지(無知)하여 놓쳤다는 것. 이때 앞서의 시, 도 →구, 군 →읍, 면, 동의 행정구조를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였어야 했다. 즉, 시, 도를 8도가 아니라 25~30개 정도의 광역 자치단체로 쪼개어 전체를 2단계로 한다면, 한반도 내의 망국의 지역감정, 분쟁도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구, 군과 읍, 면, 동을 ICT시대에 걸맞게 통폐합해서 하든지.. 구조조정이란 것이 인력을 조정, 감축하는 것으로만 여기면 안 된다. 결과적으로는 조직 슬림화를 통해 덩치를 줄여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기도 하지만. 이런 일들의 전제조건은 환경변화(신기술의 진보 포함)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하고도 민첩한(Agile) 조직으로 갈 수 있는 지도자의 능력, 즉, 미래를 보는 예지(비전), 의지와 능력(Transformational leadership)과 더불어 변화에 동참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수용태세, 그리고, 구현할 수 있는 기술역량 등이다. 

그런데, 우리 행정전산망 사업의 주역은 유감스럽게도 기술자들이었다. 맨땅에 헤딩했던 IT기술자들 노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말인 즉, 이들에게는 조직을 개폐(부수고 재창출)할 권능이 없었다는 말이다. (방향 설정, 조직 재설계 없이) 자동화하지 말라, (그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방식과 나아가 필요하면, 일 자체를 차라리 깡그리 없애 버려라, 그러면 의미 없는 전산화를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을 텐데). 괄호 안의 내용은 필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보탠 것이다. 원제는 ‘Do Not Automate, Obliterate!’, 미국의 유명한 컨설턴트의 글 제목이다. 정보화 사업의 실패율이 70~80%라고 업계에서 추정하는 이유이다. 어느 분야든 프로젝트 성공작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대다수인 실패작은 꼬리를 감춘다. 우리와 비슷한 때 이웃 일본에서도 e-Japan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펼쳤으나, 존재감 없이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남의 나라 걱정해줄 일 없지만, 최근에 들은 바로는 또다시 새로운 버전으로 Digital Japan을 시작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디지털청(庁)을 세웠다고 한다. 과연 지금과 같은 일본의 행정 관행과 정보화 관련 국민의 의식, 행동 수준 변화 없이, 청을 만들었다고 성공할까?

조직 구성원의 Demographics(인구통계학적 속성)이 변하고, 기술이 일취월장 발전하고, 그것도 단순한 선형적 진화, 발전이 아니라 파괴적 혁신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나타나 신천지가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실제 우리 눈과 귀로 경험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면위에 뜰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 다반사가 되고, 조직이 구현하는 목적물을 활용하고, 재생산 싸이클로 피드백하는 변화 → 혁신 → 재변화 → 재혁신의 다이내믹 프로세스를 이루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공부문은 이런 변화와 혁신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언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고, 당시 환경을 반영, 수용 가능한 기준에 맞추어 제정된 규정, 규칙을 다시 현 실정에 맞추어 개정/개폐하지 않는 한, 악법도 법인지라, 불합리한 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나서서 바꾸어 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새는 교육 기자재 구입비가 대학 예산으로 교수에게 일정액이 할당되어 규정대로 필요한 기자재를 구입 활용할 수 있다. 지난 얘기이지만, 당시에는 발령이 나면 서무에서 신임교수 연구실에 공무원과 똑같은 철제 책상과,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삐거덕거리는 철제 회전의자, 합성목재로 만든 서가를 갖다 주길래, 책상은 그렇다 치고, 의자가 너무 불편하다. 그러니, 내가 사비로 돈을 더 부담할 테니 사무용이 아닌, 연구자용 의자로 바꾸어 주면 좋겠다고 했으나,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조달청, 문교부 구매 지침을 따라 계약된 제품을 사야(지급) 한다고. 게다가 쓰지 않는다고 버릴 수도 없다. 국가 소유인지라 자산 재고로 잡혀 있으니까. 

그뿐이 아니다.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하러 출장을 가는데, 대학지원이 이공계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나 인문사회계열에서는 거의 자비 출장이었다. 공무원 해외출장을 자비로 가는 이가 없다. 그러나 교수는 자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문제는 공무원 신분이라, 필자 기억으로는 당시 반드시 정부과청청사에 가서 정부와 계약을 맺고 있는 여행사가 발급하는 티켓(이를 GTR이라고 했었다)을 자비로 구매했었다. 물론, 다른 여행사가 경쟁적으로 저렴하게 제공하는 티켓을 나는 살 수가 없었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규정을 만들고 시행했겠지만, 나로서는 수긍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이 획일적이었다. 예외가 있을 법한데, 있다 해도 사실, 공무원들이 소신과 재량을 동원해서 허용해 줄 리가 없다. 공조직 경직성의 한 단면이다. 학교 보직 일을 하면서, 문교부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교수님 말씀이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서울대만 대학이 아닙니다’라는 대꾸이다. 250 여 대학에 내리는(?) 문교부 지침들이 많은 경우, 서울대학에는 해당이 안 되는 것이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앞에서 필자는 대학본부 연구처에서 보직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변화와 혁신, 그 길로 가는 합리화에 우리가 얼마나 무딘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전하고자 한다. 문교부에서는 해마다 정부 예산으로 전국의 대학 교수들 중 연속으로 6년을 근무한 이를 대상으로 본인이 원하면 해외 교육기관 등에 안식년 휴가/연구(Sabbatical)를 선정해서 보낸다. 기본이 1년이며, 4년 근무한 이는 6개월 부여된다. 해마다 전국 대학교별로 할당하고, 대학에서 선발해서 문교부(한국학술진흥재단, 지금은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폐합됨)에 천거하는 절차이다. 당시, 서울대에는 1800여 명 교수 중에 매년 50여 명 정도가 배정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안식년을 떠나는 이도 있고, 또 안식년 자격이 되면서, 정부 돈이 아니라 국제기관, 기구 또는 국내 유명 공익재단 등에서 연구 프로젝트, 초빙 등으로 떠나는 이도 연구처에서 심사해서 자격 부여를 한다. 선발되면 2개 학기 강의를 의무 면제받고, 재정지원도 받는다. 쉽게 말해서, 본인이 받던 봉급은 그대로 다 나오고, 항공료 등으로 당시 USD 20,000이 지원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제도는 교수뿐만 아니라 정부관리들에게도 거의 같은 수준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정부 예산으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다. 고급 공무원을 선발하여 2년간 국비유학을 보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아무튼 그 추천 리스트가 연구처에서 주관하고 교무처 협조받아 사무국으로 넘어가서 간부 회의에 보고되고, 회의자료에 기록된 소요 예산 명세를 보면서 필자의 눈을 끄는 내용이 있었다. 정부 돈으로 안식년을 받은 이들은 봉급과 각종 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기타 다른 재정으로 나가는 이들은 봉급만 주고 수당을 주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 필자는 이것이 이해가 안 되었기에, 간부회의 때 사무국장에게 물었다, 필자 생각으로는 다른 재정으로 나가는 이들은 본인이 노력해서 재원을 확보하여 다른 교수들 몫을 갉아먹는 경쟁을 완화시켜 다른 지원자들에게 도움을 준 기특한 이들인데, 인센티브를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왜 수당을 깎아내고 지급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사무국장의 대답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시행되어 왔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관행대로”. 전형적인 무난한 일처리 결과물이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원래 대체적으로 조직에서 일 잘하고 추진력 강한, 유능한 자는 인기가 별로다. 합리화, 특히, 개혁을 주창하다 보니 많은 조직 구성원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조직구성원들이 투표해서 장(長)을 뽑는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래도 웃고 저래도 좋은, 그래서 누구의 이익도 침해하지 않는 맘 좋은 아저씨로 지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한 경우다. 왜 그 일을 해야만 하느냐?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과거엔 그렇게 해야만 했으나, 이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진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바꾸어야 한다. 만약에, 그 일을 지금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왜 변함없이 그런 방식으로 해야만 하나? 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법한데…… 왜냐면, 기술과 도구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했기 때문에…… 결론은 그 자리에서 총장이 판단 정리하여 구분 없이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대학의 세계화, 국제화 기치 하에 일어난 에피소드

이즈음 호암교수회관이 문을 열게 되고 외국으로부터의 방문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외국인 학생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고 대학원생들이 많아지면서, Married Students Housing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후문 쪽의 기숙 시설 증축을 하고자 하는 계획을 기획처와 시설관리국 쪽에서 입안하였다. 당시 잘 나가던 유통업계인 모 실업 회장이 고맙게도 학교에 기증하는 두 개 동에, 학교 예산으로 1 개 동을 보태 총 3개 동의 대학원생 기혼자 숙소를 건립하고자 대학본부에서 건설부에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번번이 신청이 반려되어 시공의 삽을 뜰 수 없었다. 지금은 기초자치단체인 관악구가 개입하지만(많은 학교 관련 일에 관악구가 끼어든다) 당시에는 서울시와 건설부의 허가를 받기 위해 대학 집행부는 범 대학 차원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청와대까지 움직이게 혼신의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장애물을 헤쳐나갈 수가 없었다.. 이유는 우리가 건축하고자 하는 것이 쉽게 말해, ‘잠 따로, 밥 따로 모여’의 보통 기숙사를 짓고자 하는 게 아니라, 건설부 입장에서는, 그것이, 잠과 밥을 같이 하는 “아파트” 사업을 서울대학이 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수도권 대학 정원 동결 관련 법규 때문에 국가, 사회적으로 급박하게 증대되는 부문의 점증하는 수요에 융통성 있게 대학 교육이 대처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비슷한 경우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기혼자 숙소는 지어졌지만, 발상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아쉬움으로 남는 사례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복합, 융합, 극초연결(Ultra-Super connected)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정신과 태도는 거의 모든 영역에 2분법적 접근을 하고 있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실종되어있다. 대학의 칸막이는 심각하다. 전공과 계열의 분리막 등. 인문, 사회계열과 자연, 이공계열의 차별 등등 곳곳에서 2분법의 폐해를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흥미롭게도 약 20여 년 전에 컴퓨터공학과의 몇 교수들이 제안하여 서울대학 내 IT 관련 전공 교수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컴퓨터공학과 교수 수보다 더 많은 관련 분야 전공자들이 다른 단과대학 학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인문, 사회, 자연, 이공, 의치학 등 여러 분야에 근무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과학재단(지금은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폐합)에서는 자연, 이공 단과대/학과에 소속되어 있는 교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인문사회계열로 특정한다. 이들은 과학재단과는 관계없는, 즉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심리학과에 소속될 수 있는 뇌과학자, 의사 등은 어떻게 분류될까? 연구처 일을 하다 보니, 실제 컴퓨터공학과에 근무하는 교수가 제안하는 Data Base 관련 연구 프로젝트 연구비는 비슷한 제목의 인문사회 타전공에 몸담고 있는 교수의 연구비 신청 액수보다 대략 10배 더 높아야 정상으로 여긴다. 필자는 과학재단, 문교부와 다투어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소하여, 과학재단 발주 연구 프로젝트에 응모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으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전에는 아예 제출 자격이 없었으나, 이젠 자격이 주어졌음에도, 과제 심사평가단 (패널)구성원들 그들만의 리그를 뚫지 못했다. 

다른 이슈이지만, 전공에 대해서 잘 모르고, 부모 또는 고교 선생님의 진학지도에 따라 대학, 학과에 일단 입학하고 보니, 내가 해보고자 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방황하게 되는 학생이 많다. 이런 부류의 학생들을 어떠한 방향으로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까? A문으로 들어왔으니 무조건 A문으로 졸업하고 나가야 하는 걸까? 다양성, 다원성을 어떻게 확보, 지원해 주어야 하나? 해결책이 전혀 없는 걸까? 이분법에 휘둘리는 폐해이다.

 

 

이성이 지배하는 정돈의 시대를 기대하며

이유 없는 존재는 없다. 제도, 규칙과 규정, 관습, 넓게 보면 문화까지도 존재하는 것은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얽혀서 환경을 형성하기도 하고, 어쩌면 거꾸로 환경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이 아니라, 단언하건대, 끊임없이 주거니 받거니 상호 교호(交互)작용 함으로써 쉼 없이 균형점을 찾아 움직이는 대체로 매우 역동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특성을 지닌 연동을 끊고 개입해서 바꾸어 놓아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변환(Transformation)이고 혁신(Innovation)이며, 재창조(Re-Creation)이다. 이런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때, 이런 일들을 가능케 이끌어주는 en-abler로서 아주 유용한 수단이 ICT이다. 그러나, 이 수단이 오용, 남용되면 대다수가 원하지 않을 빅브라더 사회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인간의 피조물인 AI, 로봇들이 궁극으로는 인간을 지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말이다. 이럴수록, 더욱더 이성이 지배하는 정돈의 시대가 오길 기대해본다. 그것이 가변적이고 심한 경우, 찰나적(刹那的)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 註): 오래된 일들을 기억으로 재소환하다 보니, 순치되지 않은 거슬린 표현, 여러분들의 해량(海諒)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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