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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동문칼럼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주 최 부자집의 품격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주 최 부자집의 품격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196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대두된 개념이다. ‘재주복주(載舟覆舟,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기업은 사회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는 비유가 있다. 이는 ‘사회는 기업을 띄우기도 하지만 기업을 뒤엎기도 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기업 자체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 부를 지녔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도 200년 이상 그 부의 명맥이 이어지지 못하였다. 미국보다 400년 전인 조선 중기에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기업 활동의 투명성과 윤리성이 발휘되고 있었다. 바로 경주 최 부자집의 부자 품격이다. 

‘부자 3대 못간다’는 말이 있지만 경주 최 부자는 3대를 넘어 400년간 부를 유지했다. ‘상생(相生)의 가훈’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눈앞에 놓인 단기적인 이익보다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경주 최 부자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기업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출처: 경주교촌마을 홈페이지

 

‘경주 최씨 가문’은 1대 정무공 최진립에서 12대 최준까지 12대에 걸쳐 400년간 만석의 부로 나눔과 상생을 실천한 명문가문(12대 가계, 1568~1970)이다. 정무공의 손자 최국선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앙법을 도입, 수리시설을 개선하여 생산성을 높혔다. 또 8할을 받던 소작료를 절반만 받는 파격조치를 단행하는 혁신 경영에 앞장섰다.

세상에 부자는 많지만 많은 재산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부자는 매우 드물다. 경주 최 부자는 대대로 내려오면서 나눔을 실천한 가문이다. 최 부자집이 400년간 부를 이어올 수 있었던 정신철학에는 ‘육훈(六訓, 가훈)’이 있다.

①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하지 마라 ② 재산은 만석이상 지니지 마라 ③ 과객을 후하게 대하라 ④ 흉년에는 전답을 사지마라 ⑤ 며느리는 시집을 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⑥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가 그것이다.

이 가르침 중에 ‘부는 만석이상 하지마라’는 부를 더 증식하지 마라가 아니라 부를 축적하되 만석 이상은 사회에 환원하라는 뜻이다. 사소하지만 ‘장을 볼 때 물건 값을 깎지 말고 파시에 장보지 마라.’는 가난하고 어려운 서민들과 잘 지내고 인심을 얻으라는 뜻이라 사료된다.

처세술을 담은 ‘육연(六然)’이 있었는데, 그 중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어도 담담하라)과 실의태연(失意泰然, 뜻을 잃어도 태연하라)은 재물과 명예를 적절하게 하여 품격을 지키라는 가르침이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최 부자집 과객은 하루에 많게는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11대 최현식(국채보상운동 경주군 회장)은 경주의 문중 대표들과 사랑채에 모여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고 추진하였다. 또 최익현은 이곳을 거점으로 의병 봉기를 계획하였고, 1903년 의병장 신돌석은 일제탄압을 피해 장기간 최 부자집 사랑채에 숨어 지낸 바 있다.

최 부자는 나라를 위한 일에는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병자호란에는 장군으로 참전하여 순직하였다. 정무공 최진립은 당시 종들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다. 지금까지 전사한 두 노비(옥동과 기별)의 공을 기려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노불망비’라 해서 종가 옆에 충성스러운 노비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일제 때는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백산상회를 세워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돈으로 120만원을 헌납하였는데, 임시정부 운영비 50% 이상 담당하였다. 

최준(1884~1970)의 결단은 최 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최종판’이었다. 그는 식민지 역사를 몸소 겪으며 교육 부족이 나라를 빼앗긴 이유라 생각하여 해방후 1947년 전 재산을 기부하여 대구대학(영남대학교의 전신)을 설립하였다.

그는 “재물은 분뇨와 같아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라고 한 단석산 스님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하기 위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우리 경제는 ‘3고(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과 무역 적자 급증 등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이 어려움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방책 중의 하나가 자발적 상생협력이라 할 수 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처럼 기업들이 상생협력으로 총체적 위기를 돌파하길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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