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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읽기(15)

시장 읽기(15)

글 문정빈 교수(고려대 경영대학 일진창업지원센터장)

기업은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가?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POSCO의 경우 기업시민을 핵심적인 경영이념으로 내세우고 환경과 사회 측면에서의 책임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SK 그룹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Double Bottom Line (DBL)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들도 매년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 (sustainability report)를 발간하며 환경, 사회, 지배구조 (ESG) 측면에서의 성과를 점검하고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2019년 8월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180여 개 기업의 CEO들이 모여 직원, 협력사, 고객, 지역공동체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주주이익과 더불어 추구할 것을 천명하는 Business Roundtable 성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트렌드는 기업의 존재 목적을 이윤 극대화와 주주가치 극대화로 좁게 정의하는 Friedman 식의 사고방식이 저물고 있으며,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 지속과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사고방식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Michael Porter 교수는 이미 2006년 HBR에 기고된 논문에서 “건강한 사회는 성공적인 기업을 필요로 한다. 또한 성공적인 기업도 건강한 사회를 필요로 한다.”라고 명시하여 기업과 사회의 상생적 관계 설정이 필요함을 강조한 바 있고, 이는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올해 더할 나위 없이 참으로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왜 기업시민이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르게 되었을까?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21세기의 글로벌 자본주의는 두 가지 점에서 과거의 자본주의와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자본주의를 특징하는 요인 중 두 가지는 무료 투기 (free disposal)와 익명성 (anonymity)인데, 경제학 원론 앞부분에서 배우는 다다익선 (more is better) 원칙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비용 없이 버릴 수 있다는 무료 투기의 가정에 기반한다. 또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자본주의에서 생산과 소비는 익명으로 행해지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선택을 할 때 ‘가성비’를 따질 뿐 생산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는 먼 옛날의 마을기반 경제에서 빵을 굽는 이 (baker), 집을 수리하는 이 (carpenter), 옷을 짓는 이 (tailor) 등이 누구인지 모두가 알던 때와 뚜렷이 구분되는 중요한 속성이었다.

그러나 21세기 글로벌 경제에서는 자원의 고갈과 지구적 기후변화 때문에 무료투기의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또한 정보기술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익명성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고성능 비디오 카메라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그들이 촬영한 영상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될 수 있는 세상에서, 기업이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서 환경오염, 노동 착취, 갑질과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하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위험부담이 커졌다. 이에 따라 책임 있는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할 경영환경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하여 투자를 유치해야 하며, 우수한 노동력과 경쟁력 있는 협력업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책임 있는 기업시민으로 행동하는 기업을 선택하고, 우수한 노동력이 그러한 기업에 몰리며, 투자자들이 그러한 기업에 투자할 때 기업은 좋은 기업시민으로 행동할 동기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활동 정보가 효율적으로 전파되는 평판 시장의 존재가 필수적이며, 깨어 있는 소비자, 노동자, 투자자, 그리고 유권자로서의 시민 개개인의 의식이야말로 기업을 좋은 기업 시민으로 이끌 수 있는 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Q (기업가센터) 시장의 실패에 대한 일반적 해결책은 정보의 비대칭 해소에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새로운 회계 기준을 만들려고 논의할 때에도, 기업 활동의 외부 효과를 적절히 규제하기 위한 논의가 벌어질 때에도, 쟁점은 정보의 비대칭 해소에 놓여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첫 번째 고민은 시장 참여자가 균등한 정보 접근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실천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 고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포함한 시장의 실패라는 현상을 정보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는가입니다. 교수님의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A (문정빈) 첫 번째 고민에 대한 대답을 드리자면, 시장의 주요 참여자 모두가 균등한 정보 접근을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정보통신기술의 세례를 받은 영리한 소비자,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주민들이 늘어났고, 미디어 환경도 과거와 같은 독과점이 깨지고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이 난립하는 춘추전국시대로 들어섰다고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과거에 비해 정보의 비대칭의 정도는 줄었다고 할 수 있으나, 반면 정보의 홍수 때문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정보가 전파력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3년 남양유업 갑질 사태를 떠올려 보시면,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연장자에게 상스러운 욕설을 하는 녹음테이프의 존재였고, 그 테이프 하나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을 여러 갑질의 증거들을 정보량 면에서 압도하면서 사회 전체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 고민에 대한 대답을 드리자면, 제가 바라보는 시장의 실패에 대한 해결책의 핵심은 거래비용의 감소입니다. 외부성의 존재로 인해 시장이 실패할 때, 소유권이 잘 정의되어 있고 거래비용이 낮다면 외부성의 내부화를 통해 시장의 실패를 교정할 수 있다는 코즈 정리를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정보의 비대칭 해소가 시장의 실패를 완화 내지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유는 거래비용의 주요 요소인 탐색비용을 낮춰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 해소가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합니다.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려면 거래비용의 또 다른 요소들인 협상 비용과 이행강제 비용 또한 낮춤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을 바꾸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강제력을 통한 개입이 있거나, 아니면 외부성에 대한 대가가 책정되어 자발적인 교환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전자의 사례는 환경오염부담금과 같은 피구세 (Pigouvian tax), 후자의 사례는 탄소배출권과 같은 시장의 형성입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가격 발견 (price discovery)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피구세의 경우에도 오염 물질의 단위당 사회적 비용을 얼마로 볼 것인가를 정확히 평가해야 환경오염 물질의 과다 배출이라는 시장의 실패를 적절히 교정할 수 있고, 탄소배출권의 경우에도 시행착오를 통해 적정 가격을 알아내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 이후에야 비로소 시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기업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시장의 실패 요인들 (그중에는 과다 생산되는 부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과소 생산되는 긍정적인 것들도 포함됩니다)에 대한 측정,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거래비용을 낮추어 시장을 형성하고 가격기구가 작동할 수 있게 한다면 환경오염과 같은 부정적 시장의 실패는 물론, 친환경 제품이나 기술 개발, 사기업을 통한 공공재의 공급, 사회적 약자의 보호 등과 같이 현재에는 시장의 실패로 인해 과소 공급되고 있는 아이템들도 보다 효율적으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사회적 가치의 평가 및 보상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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