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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동문칼럼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여름,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이유재 학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이 학장님께서 직접 경영대 건물을 구경시켜주시면서, 최근에 학생 사물함 공간 등을 새롭게 단장했다고 설명해 주셨다. 이 학장님 취임 이후 경영대인들의 정체성 확립, 동문들 간의 유대 강화 등을 위해 많은 행사 계획들을 세우셨는데, 갑작스러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계획들이 연기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에 이 학장님께서 학생부학장을 맡고 계실 때, 재학생, 동문, 교직원들이 함께 모여 ‘경영인의 밤’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했던 기억도 함께 나누었다. 방학중임에도 스터디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고, 특히 여학생들이 많았다. 불행히도 우리 동기 백 명 중에는 여학생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지난 학창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 후배들이 우리보다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들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80년의 봄에 시작되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매일 수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국토론회가 열렸고, 서울역에서 수만 명의 학생들이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5월 17일에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대학들은 휴교에 들어갔으며, 마침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가을이 되어서야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이후 학내에 전투경찰과 형사들이 버젓이 상주했다. 반정부 구호를 몇 마디 외치고 개같이 끌려가던 친구들, 심지어 중앙도서관 사층 난간에서 투신자살을 했던 학우들도 있었다. 암울한 시대였다.

많은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찬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패배의식과 냉소주의에 빠져 좌절하고 방황했다. 특히 우리 경영대에서는 교수가 되겠다는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영학 공부는 뒷전이었다. 매일 밤 시국토론 등을 빙자하여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라는 상대가(商大歌)를 부르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르마다의 전신인 늘공회에서 축구를 열심히 했고, 메아리라는 노래 동아리 활동도 했다. 이제 환갑을 넘기고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그때 전공 공부를 소홀히 했던 것이 후회되지만, 그래도 그러한 과외 활동들로 인해 나름대로 폭넓은 안목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자위해 본다. 비록 암울한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대의 일원이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큰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날 나의 과오를 후배들은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으로 몇 마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이제 우리 후배들은 우리와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선 후배들이 학창 시절에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큰 꿈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지레 소시민적인 평범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그저 남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 걷지 말고, 스스로 창조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때는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을 고려하기보다, 무엇을 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직업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일차적으로는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인생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들이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와 사회와의 관계를 윈-윈 관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째,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누가 시키기 때문에 억지로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라면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억지로 할 수가 있겠지만, 평생을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제일 즐겁고, 그래야만 능률도 오르는 법이다. 논어의 옹야편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즐거워서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못 당한다. 그저 즐거워서 자주 열심히 하게 되면 저절로 잘하게 되는 것이다. ‘펀(fun)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했듯이, 하는 일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 

둘째,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남들에 비해 비교 우위가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축구를 좋아해서 밤새 프리미어 리그의 경기를 본다고 해서 누구나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끼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소질도 중요한 것 같다. 좋아한다는 것과 잘할 수 있다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좋아는 하는데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기에는 재주와 실력이 모자랄 경우, 좋은 취미거리가 될 수 있다. 몇십 년 동안 취미로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덧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게 되어, 은퇴 후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하지만 평생의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와 취미 생활을 하는 문제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셋째,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좋고, 그 짓을 남들보다 잘한다고 해서, 도둑이 되라고 권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말인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이고 돈은 자연적으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직업으로 선택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 후배들을 보면 우리보다 체격도 더 좋고, 얼굴도 더 잘 생기고, 말도 더 잘한다. 역시 역사는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나는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갈등들이 많다. 빈부 갈등, 지역 간의 갈등, 남녀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등등. 그중에서도 우리에게는 세대 간의 갈등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의 생각들이 너무나 다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갈등이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했을 때, 때로는 더 큰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성세대들부터 나이가 벼슬이라는 권위주의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더 똑똑하고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말을 꼰대들의 말이라고 일축하지 말고,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선배들의 말을 선별해서 들을 수 있는 지혜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 후배들이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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