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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동문칼럼

인생의 단어, Memento Mori.

인생의 단어, Memento Mori.

#생각의 순간


 하루하루를 ‘더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갈 길이 아득히 멀기만 하고 문득 내 안은 텅 빈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하기 쉽지가 않다. 또 어떤 답을 내어보더라도 일상에서 그 답을 실천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잘 살기 바라는 마음이 가득 들 때면,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더 흐릿해질 때면, 마음 한 켠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보호기제가 본능처럼 작동하듯 말이다.


# 선택의 기준


 모두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단 한 번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일상의 고민을 넘어서서 가야 할 길과 가지 않을 길을 선택할 때도 자주 있다. 왜 이 길이 다른 길보다 더 나을까? 삶의 여정을 인도하는 가이드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가야 할 길을 선택할 때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선택은 성공하고, 어떤 선택은 실패로 끝나고 말아 마음이 상할 때도 있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선택과 실천으로 방향을 달리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삶에서의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답을 찾아보고 싶어서 매 해 백여권의 책을 지난 수년간 읽어보았다. 아마도 어떠한 삶의 변곡점에서 겪는 제2의 사춘기였다 싶지만, 그 과정에서 귀한 생각으로 가득한 많은 책들을 발견했다.


 더 성공한 삶과 더 나은 삶의 차이가 무엇인지 또는 자기 자신과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할 때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경제의 은유로 익숙한 경제학자 애덤스미스(Adam Smith)가 책으로 소환되었다. 도덕철학적 관점에서 ‘좋은 삶’을 기준을 삼는 것은 선택과 실천에 있어 ‘좋은 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부론』에 앞서 출간한 도덕론에 관한 저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삶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그의 나이 36세에 ‘공감’ 그리고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를 통한 ‘자아성찰’이 삶의 기준이 된다는 지혜를 알려준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경제적 부가 전부는 아니고, 낮은 욕구단계에서는 물질적 풍요로움이 불가피하게 행복에 중요하지만 이것이 가장 고차원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인간은 이기심을 가진 존재이지만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때, 스스로를 일깨우고 자기 행동의 도덕성 여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애덤스미스는 말한다. 다른 이들은 물론 스스로를 바라보는 공정한 관찰자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제시하면서, 그런 사랑을 받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세세한 방법들을 함께 기술했다. 1)신중_건강과 돈, 평판 등 인생과 관련된 모든 것을 현명하고 진지하게 살피는 것, 2) 정의_타인에게 피해 혹은 상처를 주지 않도록 공정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 3) 선행_감사하는 마음으로 선하게 대하는 것이다. 애덤스미스가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더 나은 삶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삶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여정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 그 여정의 시작과 중간과 끝에서 각각의 시점이 주는 인생의 의미를 잃지 않거나 잊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새기는 것이라고 대답해본다. 그러하기에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인생의 한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 메멘토모리


 인생이라고 부르는 많은 단어 가운데 부유하는 삶의 닻을 내리게 하는 하나의 단어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가 바로 그 단어이다. 고대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었다. 수년전에도 살아 있었고 어제도 살았으며 오늘도 살고 있으니 누구나 죽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저 옆으로 미뤄두고, 내일도 당연히 살아 있을 것이라는 시간의 관성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삶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며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 그렇기에 과거를 보며 현재를 살핌으로써 끝이 맞이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결국 ‘죽음’을 통해 배우는 것은 오히려 ‘삶’이다.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또는 인생의 챕터가 넘어갈 때, 삶의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심사숙고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평균 기대수명 100세 넘어 숨어있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주욱 끌어 당겨 눈앞으로 가져와 본다. 10년 후 죽는다면 이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 5년 후 3년 후 1년 후 죽는다면으로 시점을 당겨올수록 현재의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더욱 명징하게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죽음이 바로 내 생의 한가운데에 있기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집중해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메멘토모리가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깨닫게 해 주는 순간이다.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을 알아채기 위해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으로 구성될 지 리스트를 써본다. 구체적인 꿈이 설정되면 실현 가능할 것만 같은 행복감이 느껴지고,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에 힘이 실리면서 삶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달성여부과 상관없이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반복적으로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세세히 깨닫는다.


 그런데 이 리스트를 내가 죽음을 앞두었다고 생각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작성하려 하면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죽기 직전에 진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더 이루고 더 얻고 더 경험하는 것도 물론 크게 소중한 일이다. 그렇지만 특별한 어떤 것이라기 보다 특별한 일들을 챙기다 보니 소홀했던 삶의 가장 평범한 일들, 일상을 살펴보며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먹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재료의 맛과 정성을 느끼며 밥을 먹는 것,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없이가 아니라)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이 해가 지는 오렌지색으로 바뀔 때까지 바라보는 것, (벌써 올해도 다 지나갔네가 아니라) 꽃이 언제 피고 내리는 빗소리는 얼마나 좋으며 낙엽이 지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더 자주 알아채는 것, 그리운 사람에게 주저 없이 연락하는 것, 고마워할 일에는 고맙다고 잊지 않고 말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것, 아이의 눈을 더 자주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때마다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느껴보는 것.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동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지금 이 순간 꼭 해야 할 일들이다.

 


# 그리고 바램


 글을 쓸 때는 마지막 문장을 첫 문장보다 먼저 생각하고 쓰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지막 문장부터 생각하고 글을 써나가면 글 전체가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되고 일관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마 인생도 글쓰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을 응시하는 것은 삶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살다 보면 순간순간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될 때 마지막을 떠올리며 후회 않을 선택을 한다면,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하루하루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삶을 생각할 때면 죽음을 떠올려 보자. 나무가 봄을 맞아 마른 가지에 새초록한 잎을 틔워내듯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자신을 위해, 바깥이 아닌 나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더 자주 더 깊게 들여다보는 내가 되고 싶다.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 글을 읽으시는 모두께도 그러한 봄날 되시기를 바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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