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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머무는 자리, 이관영 작가와의 만남

소리가 머무는 자리, 이관영 작가와의 만남

 

글 : 학생홍보대사 7기 최윤(학사23)

 

 

Q1. 먼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들에게 간단한 소개와 함께,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 이관영입니다. 삼성문화재단과 한솔문화재단을 비롯해 광고회사와 여러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한화생명 임원과 제3경인고속도로 대표 등을 거쳐 지난해 퇴직했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가 활동은 직장생활과 병행해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2008년 상상마당에서 첫 전시를 연 뒤, 사람마다 고유한 음성파형을 시각화해 사랑·희망·평화·공존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왔습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HOPE’,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 남북 정상의 ‘평화’처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목소리에서부터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작업의 범위를 넓혀왔습니다.

 

Q2. 경영대에 입학하셨을 당시에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셨나요? 대학 시절의 관심과 배움은 이후 진로에 어떻게 이어졌나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진로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아서, 구체적인 미래를 정해두기보다 학교를 다니면서 진로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 때까지는 과학자가 꿈이었고, 고등학교에서는 고대문명에 관심을 가지면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학력고사 성적에 따라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고고학과 고미술에 대한 관심은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에는 인류학과에 편입해 공부했습니다.

 

경영학과에서는 특히 마케팅과 조직 행동론을 좋아했습니다. 회계보다는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나중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 공부가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던 마케팅은 꼭 한 번 공부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이어온 고고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결국 첫 직장으로도 이어졌습니다. 1993년 삼성문화재단 채용 공고를 보고 고고학과 민속학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습니다. 문화사업부에서 여러 문화 사업을 담당하면서 주말에는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고 미술관과 갤러리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고미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됐습니다.

 

Q3. 여러 분야를 오가며 새로운 길을 선택해 오셨습니다. 중요한 갈림길에 설 때마다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셨나요? 삶의 방향을 가장 크게 바꾼 선택도 궁금합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여러 회사를 옮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회사를 싫어해서 떠난 것도 아니었어요. 대부분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다만 어느 단계에 이르면 또 다른 것이 궁금해졌습니다. ‘저곳에 가면 어떨까?’, ‘저 일을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호기심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삼성문화재단을 나와 사진을 공부했고, 한솔문화재단에서는 미술관 건립 준비 업무를 했습니다. IMF로 미술관 개관이 무기한 연기되자 미술처럼 시각적 이미지를 다루는 광고 회사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제 선택의 더 근본적인 기준은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1학년을 마친 1987년 아버지가 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해 저 역시 같은 병으로 10년 시한부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듬해에는 같은 강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영학과에 같이 진학한 가장 친한 친구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3년 완쾌 통보를 받을 때까지 죽음은 제게 굉장히 가까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면,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한 조직에서 출세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순간순간 제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을 선택하려고 했어요.

 

돌아보면 가장 큰 선택은 삼성문화재단을 첫 직장으로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금융권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제가 오래 좋아했던 고고학과 고미술 가까이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을 택했습니다. 거기에서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고, 결국 그때 잡은 미술과의 끈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14 개국 대사부인 《사랑》, 2026, 3D Printing, resin, LED 프랑스 테러가 한창이던 2016 년 , 적십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14 개국 주한 대사 부인들이 각 나라의 말로 이야기한 ' 사랑 ' 높이 50cm, 가로세로 변형

 

Q4. 미술을 전공하지 않으셨음에도 직접 창작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삼성문화재단과 한솔문화재단에서 좋은 작품과 전시를 많이 접했습니다. 특히 한솔 사옥에 있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대작 Landscape 시리즈 앞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경험을 했고, 당시 한국에 막 소개되던 이우환의 작품에서는 제 삶에 대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현대미술이 점점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광고 회사로 옮긴 뒤에도 미술사 강의를 듣고 전시를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순한 미술 소비자가 아니라 창작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결정적인 아이디어는 2006년에 찾아왔습니다. 버스 안에서 미디어 사상가 빌렘 플루서의 『그림의 혁명』을 읽다가 ‘말은 정보를 새기기 쉬우나 빨리 사라진다’라는 내용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목소리를 음성 파형으로 시각화해 사라지지 않는 형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후 6개월 동안 음성인식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알아본 결과, 사람마다 음성 파형이 다르고 목소리가 지문처럼 한 사람의 고유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유사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는지도 찾아봤고, 결국 음성 파형의 3차원 입체 제작과 관련해 특허를 출원해 2007년 특허와 발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래도 미술 비전공자였기 때문에 직접 만들 엄두는 내지 못했습니다. 2007년 겨울 KT&G 상상마당 예술감독에게 전시 기획안을 보여주면서 작품은 미술을 전공한 지인들에게 제작을 맡길 생각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아이디어는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러면 준비가 다 된 것 아니냐. 직접 작업하면 된다”라고 했어요. 일주일 뒤 3인 기획전 참여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2008년 5월 첫 전시를 열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이후에도 비슷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람을 찾아가고, 먼저 물어보고,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렇게 열린 문들이 하나씩 다음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Q5. 지금까지의 작업 가운데 자신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왜 그 작품인가요?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어머니의 ‘건강해’라는 목소리를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그동안 여러 유명 인물의 목소리를 작품으로 만들어왔지만, 어머니의 ‘건강해’라는 제게 직접 남겨주신 말이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많은 고생을 하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긴 말인 만큼, 그 목소리에는 어머니의 삶과 저와의 관계가 함께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만들 수 없는 저만의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바라봤을 때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도 아마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관영, <건강해 >, 2026, 3D프린팅, 레진, LED, 흙, 스틸, 15 x 27 x 50cm

 

Q6. 아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먼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3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좋은 상사와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직장 생활 자체에 후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직장 생활을 마치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남의 일을 많이 하고 살았구나.’

 

조직에서 인정받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조직을 떠난 뒤 ‘내 것은 무엇인가’를 묻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월급을 얼마나 많이 받을 것인지, 얼마나 출세할 것인지만큼이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일찍부터 고민했으면 합니다.

 

당장 현실적인 진로를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플랜 A를 따라가면서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한 플랜 B를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미술계 사람들을 만나고 주말에는 작업을 했습니다. 회사와 미술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 오랫동안 미술과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한의원에서 제게 “엔진은 60km/h인데 그동안 100km/h로 달렸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돌아보니 맞는 말이었어요. 저는 오히려 30km/h 정도의 속도로 자전거를 타면서 꽃도 보고, 숲과 바람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와 나에게 맞는 속도가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속도가 자신에게 맞는지 알아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Q7.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살아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바라봐주는 것, 나와 다른 존재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면서 자신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산을 다니다 보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아주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꽃은 그 자리에서 피어나 바람을 느끼고, 주변의 다른 생명들과 함께하다가 사라집니다.

 

우리도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과 관계없이, 존재 자체로 충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전시 안내 ]

이관영 개인전 《ECHOES》 2026. 8. 24. – 10. 24.
장소 | 강남 JN갤러리
문의 | 02-511-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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