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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이야기, 『트렌드 모니터 2022』
스무 번째 이야기, 『트렌드 모니터 2022』
2019년 12월,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19의 글로벌 팬데믹은 블랙 스완처럼 전 세계인들의 생활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고 있다. 코로나가 가져온 ‘답답한’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탈출구를 찾고 있는 듯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가 끝날 날을 막연히 기대하며 ‘위시 리스트’를 적는 대신, ‘짠테크’로 절약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미래의 가치에 투자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만족을 지연(遲延)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내 주변 환경과 일상, 사회와 정책 이슈에까지 광범위하게 개입하면서 개인의 통제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대중은 파편화되어 있으면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원하는 ‘슈퍼 개인’이 되려고 하는 듯 보인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예상될까? [트렌드 모니터 2022: 대중을 읽고 기획하는 힘] (마크로밀 엠브레인(최인수·윤덕환·채선애·송으뜸·이진아) 지음, 시크릿하우스, 2021)에서 ‘답답함이라는 감정을 풀어줄 통로’를 찾아보자. 이번 서평에서는 그 중에서도 일하는 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가) MZ세대가 사표를 던지는 이유: 시간 선택권, 통제감, 자기 계발 욕구 ‘일상적 통제감’을 확대하면서 생기는 현상
① ‘일상적 통제감’을 확대하면서 생기는 현상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통적으로 회사에서는 목표 매출(또는 목표 영업이익)을 넘어서는 성과에 대한 보상을 성과급(인센티브)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해왔는데, 과거 이 상여금은 직장인들에게 ‘보너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계획해서 예상했던 것(또는 목표)이 아닌, ‘덤’이라는 개념이기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원칙은 철저히 경영진의 ‘시혜적’ 의사 결정 사안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직장인들은 그 인센티브 지급에 대한 기준과 내용을 철저히 알려주기를 원했다(인센티브/상여금 기준을 상세히 알려줘야 한다 61.8% vs. 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30.3%). 이외에도 단기 휴가는 물론이고(내가 필요한 날짜에 사용해야 한다 69.7% vs. 회사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 26.9%), 심지어 출퇴근 시간도 회사에서 정한 방식이 아닌 내가 정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했다(출/퇴근 시간을 나에게 맞춰 조정 56.1% vs. 회사에서 정한 시간에 맞춰야 41.4%).
이처럼 2021년의 직장인들은 최대한 자신의 상황에 맞게 회사의 환경을 맞추고(회사 환경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싶어 한다(나는 회사 생활에서 최대한 나의 상황에 맞게 회사의 환경을 조정하고 싶다–65.6%).
비단 직장 생활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상적인 영역을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상생활을 살고 싶다–85.6%).
② 강한 통제 욕구, ‘좋은 회사’를 판정하는 기준이 되다
이렇든 주변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려고 하는 2030세대의 욕구는 선배 세대에 비해 훨씬 강렬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좋은 직장’을 판단하는 기준에서도 잘 드러난다.
스스로 좋은 직장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 중에서 40대와 50대의 경우 좋은 직장이라고 느낀 첫 번째 이유로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회사’라는 점을 꼽았다(이유 1순위–50대 52.8%, 40대 39.3%).
반면, 20대와 30대는 각각 그 이유가 달랐다. 20대는 ‘직원들의 워라밸 라이프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좋은 직장의 1순위로 꼽았고(이유 1순위, 38.8%), 30대는 사내/직장 문화가 유연한 회사라는 것을 첫 번째로 선택했다(이유 1순위, 40.9%).
40대와 50대는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회사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좋은 직장의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생각하는 반면, 20대와 30대는 자신에게 시간을 주거나(워라밸), 자신의 주장이 무시되지 않고, 권위적이지 않은 조직 문화가 있는 회사를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2030~4050 중 누가 회사를 주도할 것인가
그만큼 2030세대의 높은 퇴사율과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직장 생활을 맞추려고 하는 강력한 통제 욕구는 기존 회사의 제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향에 따른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① 2030세대의 통제감 확대
첫 번째, 2030세대의 통제감 확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렇게 되면 규정이 까다롭고, 의전이나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와의 갈등과 충돌도 더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MZ세대의 욕구가 극명하게 분출된 것이 2021년 2월, SK하이닉스로부터 시작된 성과급에 대한 투명한 공개 요구 사건이다. 이 일은 SK하이닉스에 재직 중이던 MZ세대 한 직원이 자신의 대학시절 캠퍼스 리크루팅에서 ‘삼성전자’와 비슷한 규모의 성과급을 보장한다고 약속한 것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주장하면서 촉발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내부의 MZ세대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경영진에 유사한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를 진화하기 위해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자신의 “연봉 30억을 반납하고 소통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최태원 회장의 언급에 대해 MZ세대 직원들이 수용하기는커녕, “그 연봉을 직원 수로 나누면 10만 원밖에 안 된다”는 주장으로 그룹 회장의 ‘시혜’를 무색하게 했으며, 급기야 성과급의 산정 방식을 공개해달라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사과 성명을 내고, 향후 성과급 내용을 공개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며, 이 내용을 노조와 합의했다. 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대목은, 이런 MZ세대의 주장이 SK하이닉스를 넘어, 여타 대기업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의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는 다른 세대에 비해 회사에 부적응하거나, 회사와 대립하는 상황에 더 많이 놓이게 될 것이다.
② 회사를 주도하는 세대에 대한 전망
두 번째는 기존 조직 또는 회사를 주도하는 세대에 대한 전망이다. 이 전망은 2030세대의 조기 퇴사가 파생하는 결과일 수 있다. 향후에는 중·장기적인 회사 생활의 주도권과 관련하여, 40대가 일의 중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50대의 경우 현실적으로 조직 내에서의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조직 내에서의 일의 주도권(실무적으로나 관리적으로나)은 40대에게 주어질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일에 관한 철학을 연구하는 미국 로욜라대학교 철학과의 알 지니 교수는 일의 과정이 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프로젝트와 생산품, 업무를 통해 남들에게 자신을 알리며, 스스로를 인식하고 규정한다.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완전한 인간으로 느낄 수가 없다. 주관적인 경험은 너무 산만하고 추상적이어서 자아 정체성 확립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느낀다’는 말은 ‘해냈다’는 말보다 개념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사람에게 살면서 ‘일’만큼 객관적으로 자아를 깨닫게 해주는 건 없다.
- 알 지니, [일이란 무엇인가], P.23
알 지니 교수가 정의하는 ‘일’은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명확한 활동이다. 일을 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활동이 만들어내는 생산물과 일과 엮여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피드백을 온전히 받으며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는 활동인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의 이직 이유가 연봉이라는 단 하나의 경제적 가치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라면 직장인들이 매일의 수고를 들여 하는 일은 의미 부여도 힘들 뿐 아니라, 그 일을 지속할 수도 없게 된다. 일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 근무 방식의 변화 예측
① 워케이션의 확산, 모호해지는 일과 휴가의 경계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직장인들의 휴가 문화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최근 기업들을 중심으로 원하는 장소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소화하는 이른바 ‘워케이션(Work(일)와 Vacation(휴가)의 합성어)’ 근무 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CJ ENM의 경우 2021년 하반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촉진하고 업무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원격 근무지 제도’를 시범 도입했다. 이러한 워케이션 제도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2020년 에어비앤비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향후 워케이션의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61%로 대중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은 모습을 보였다. 워케이션 문화가 확산되면서 호텔 업계에서는 ‘워캉스(워크+바캉스)’ 패키지를 출시하며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으로부터 회복에 나서고자 하는 모습이다.
‘워라밸’이 중요해지고 있는 현상과 함께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사무실 근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일과 휴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은 앞으로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② 재택근무와 임금 선택의 기로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향후 직장 생활과 회사 선택 등에 재택근무 경험이 끼치는 영향은 대단히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리고 재택근무가 보편화될 경우 이로 인해 ‘워라밸’과 ‘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이 쟁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최근 구글이 직원이 영구적인 재택근무를 선택했을 때 근무지 위치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임금체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데 이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기업들도 재택근무에 따른 급여 삭감 정책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근로자들의 반발이 크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택근무 지속’과 ‘임금 삭감’의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재택근무 경험자의 상당수는 재택근무 이후 사무실 근무가 힘들게 느껴지고(2020년 36.7% → 2021년 44.6%), 이전의 정상 근무로 돌아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은 것(동의, 56.4%)이라고 말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근로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근무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면, 임금 삭감을 감수하고서라도 재택근무를 지속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③ '월급만큼만 일하기'의 속내
요즘 MZ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선 ‘월급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인식이 뚜렷하다. 4050 기성세대 직장인들이 ‘월급만큼만 일하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기성세대들은 요즘 애들이 ‘열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이 이런 태도를 취한 것에는 열정 이외에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열심히 일하는 데 필요한 ‘동기 부족’과 그로 인해 느끼게 되는 ‘업무 성취감 부재’ 때문이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은 “MZ세대는 기업에 맹목적인 충성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그들에게 업무는 재미, 의미, 나(Me)의 3미를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MZ세대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월급 이상의 의미를 갖고 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업무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④ 주 4일제의 기대 효과
주 4일제가 도입되어도 업무량은 같기 때문에 오히려 야근이 늘어나는 등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 예측된다. 특히 ‘임금 삭감’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실제 조사 결과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응답자의 43.3%가 이전보다 임금이 삭감된다면 도입을 ‘반대’할 것이라고 응답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향후 주 4일제 도입 논의에서 가장 중점적인 사항은 ‘임금 변화 여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론을 내면, 코로나로 인해 2년째 누적되는 ‘답답함’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으며 사람들은 스스로의 통제감 확장을 하고 있었다. 세부적인 변화와 변화에 대한 적응방법을 찾고 싶을 때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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