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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서평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같은 일본 다른 일본』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같은 일본 다른 일본』

* 일본과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외교와 코로나 종식으로 인해 다시 교류가 본격화될 때, 문화적인 측면에서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와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문화에서 가장 극명하게 비교된다.
- 한국과 일본의 식사 예절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 문화에서는 밥상에 놓인 그릇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것이 예의범절이다. 밥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 것은 점잖지 않다. 심지어는 ‘거지의 밥 버릇’이라고 경멸한다. 그런데 일본 문화에서는 정반대로 밥그릇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먹는 것이 예의 바르다. 밥그릇으로 몸을 숙이면 ‘개가 먹이를 먹는 자세’와 비슷해서 천하다고 한다. 의식주와 관련한 습관이나 예법 등에서 한일 간 차이는 어떤 때에는 너무 적나라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 이런 사례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일본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과 어떻게 다른가? [같은 일본 다른 일본] 김경화 지음, 동아시아, 2022.에서 일본의 혐한과 제4차 한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가) 혐한의 실체는 무엇인가?
* 지금 일본 사회에서 혐한은 명백한 사회현상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편파적인 비판을 담은 서적이 지속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우익 정치인은 공공연한 혐한 발언으로 배타적인 보수 세력을 결집시킨다. TV 시사 프로그램의 출연자에게서도 고의인지 실수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혐오 발언이 곧잘 튀어나온다. 일본에 혐한 정서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혐한이 만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열심히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인종, 성별, 국적, 민족, 종교, 성적 지향, 외모 등을 구실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일방적으로 공격, 위협,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것)를 규탄하는 운동을 벌이는 시민도 있고,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를 적극 비판하는 세력도 있다.
인터넷이 대세가 되면서 관련 정보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풍부해진 만큼, 한국을 보는 관점도 다양하다. 국경을 초월한 친구, 연인, 가족 등 사적 교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한식, 케이팝, 드라마, 웹툰 등 한국 문화를 담은 콘텐츠의 인기도 상승세이다. 혐한이 일본 사회의 정치적 키워드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친밀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일본 사회=혐한’이라는 도식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나) 혐한은 한일의 매스미디어의 ‘캐치볼’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 사실 혐한이라는 단어가 먼저 언급된 것은 한국에서였다. 1992년 4월 MBC TV에서 제작·방영한 역사 드라마 [분노의 왕국]에서 일왕이 저격당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허구를 전제로 하기는 했지만, 드라마에서 일왕의 실제 즉위식 장면이 자료 화면으로 사용되는 등 일본 우익 세력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있었다. 드라마가 방영된 3일 뒤, 일본 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유감의 뜻을 표현하는 등 외교적인 의사 표명에 나섰고, 일본의 극우 세력이 요코하마의 한국 총영사관에 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그때까지 수면 위로 불거지지 않았던 전쟁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과거사를 둘러싸고 한일 간 이견이 불거지던 민감한 시기였다. 한국의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일본에 혐한 분위기가 있다”라며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의 매스미디어가 일제히 한국의 언론을 인용하면서 “한국에서 일본의 혐한 분위기를 우려하고 있다”라는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한일 언론의 ‘캐치볼’이 몇 차례 반복되더니 급기야는 일본 신문들이 “국내의 혐한 분위기를 우려한다”라는 사설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사이엔가 혐한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 예를 들어,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 줄여서 ‘재특회’라고 부르는 단체는 자이니치나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대표적인 혐한 세력이다. 이 단체가 발족한 것은 2006년. 한일 언론이 입을 모아 정체불명의 혐한을 걱정하기 시작한 지 무려 10여 년 뒤의 일이다.
- 1990년대 이전에도 일본 사회에 한국에 대한 반감이 일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극우 인사의 돌출적인 혐오 발언이 문제가 되곤 했지만, 이런 의견을 지지하는 특정 세력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자면 혐한이라는 ‘유령’을 정치 세력으로 키워낸 것은 한일 양국의 매스미디어였다. 표면적으로는 이웃 나라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우려하는 뉘앙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의적절하고 또 효과적으로는 이 구호를 정치적 담론의 ‘주류’로 키워내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인터넷이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 외국의 상황은 전적으로 매스미디어의 특파원이 전하는 정보에 의존하던 시절이다. 한일의 매스미디어가 혐한을 둘러싸고 은밀하게 협력한 캐치볼 랠리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할 만한 주체조차 없었다.
(다) 21세기 이후, 대중문화를 거울삼아 변화한 한국관
* 21세기 들어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의 여성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면서 ‘한류(韓流)’ 붐이 일어났다. 뻔하디뻔한 이 러브스토리가 일본의 여성들 사이에 엄청난 팬덤을 불러일으킨 이유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배우의 용모가 호감을 준다, 드라마의 미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등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오로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꾼 면모가 일본에서는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순애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평가가 대체로 공감을 얻었다.
- 하지만 초기 한류의 두꺼운 팬층을 형성했던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한물간 사랑 타령에서 향수를 느꼈으리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정반대로 진부하기 쉬운 멜로 감성을 투명하고 세련되게 묘사한 점이 신선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매스미디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미학과 세계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목소리이다.
(라) 일본인이 본 [오징어 게임] 친숙함과 신선함 사이
* 드라마를 보았다는 친구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특히 중장년 남성들의 평가가 좋았다. 서바이벌 게임을 소재로 삼은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는 복잡한 게임의 룰을 풀이하고 해결하는 두뇌 싸움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은데, [오징어 게임]은 가혹한 게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삶과 감정선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꽤 참신했단다.
- 드라마에 등장하는 추억의 놀이들이 일본인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반응도 흥미로웠다. 실제로 첫 에피소드에서 충격적인 반전을 안겨주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비슷한 ‘오뚝이가 넘어졌습니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라는 놀이가 일본에도 있다. 일본인들에게 [오징어 게임]은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 한국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일본의 콘텐츠를 베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플롯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도박판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는 내용의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상당히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 1996년에 연재가 시작된 이 만화는 극단적인 설정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그 뒤로 일본에서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나 게임, 드라마 등이 상당수 만들어졌고, 생명을 건 게이머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가 확고하게 정착되었다. 일본 영화 [배틀 로얄]이나 할리우드 영화 [헝거 게임] 등도 이 장르에 속한다.
*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에 비교적 친숙한 일본의 대중들이야말로 [오징어 게임]을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마) 멜로 드라마 → 케이팝 → 한식 등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장된 일본 속 ‘한류’
* 일본에서 ‘제1차 한류’는 말할 필요도 없이 2000년대 초반 공영 방송의 전파를 탄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이다.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이 정통파 멜로 드라마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사회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다만, 당시의 한류는 이 드라마와 출연 배우의 인기에 한정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줌마’라는 단어가 때때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중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이 드라마의 인기를 놓고 중년 여성들의 진부하고 유치한 문화적 안목에 어필했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즉, 이때만 해도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높지 않았다.
- ‘제2차 한류’는 2010년대 초반, 대중성이 강한 음악과 퍼포먼스로 무장한 케이팝이 이끌었다. 그러던 와중에 뜻하지 않게 ‘제3차 한류’가 시작되었다. 2017년을 전후해서 일본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 음식, 한국식 화장이나 패션, 한국어 등에 대한 호감도가 급속히 올라갔고, ‘한국 문화 마니아’를 자처하는 10대들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스미디어나 연예기획사 등이 적극적으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 SNS 등에서 은근하게 시작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트렌드로 부상했다. 케이팝이 꾸준히 젊은 팬을 확보한 것도 사실이지만, SNS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공유하고 즐기는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 큰 동력이었다.
* 그 뒤에 찾아온 것이 지금의 ‘제4차 한류’이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젊은이들의 호감은 ‘제3차 한류’ 이후 계속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로운 움직임이 생겼다고 보아도 좋다. 일본에서도 외출이나 모임이 여의치 않으면서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의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커졌다. 그리고 이들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영화 [기생충] 등이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 ‘제4차 한류’는 폭넓은 연령층과 세대가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한류 팬덤을 이끌어 온 것은 대체로 여성층이었다. 한류에 ‘포섭’된 적이 없는 남성의 시각에서 “한류는 여성이나 젊은이의 취향일 뿐”이라는 박한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다.
-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해 시큰둥했던 기성세대 남성들도 한국발 콘텐츠를 즐기기 시작했다. [겨울연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한물간 케케묵은 멜로”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는데,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왜 이런 작품을 못 만드냐”라는 질타가 곧바로 튀어나오는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은 한 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시각이 변하고 있다.
* 특히 일본 젊은이들 사이의 한류가 새로운 교류의 물꼬로 작용하고 있고, 잘 활용해야 한다. ‘カムサする(가무사-쓰루)’, ‘チンチャそれな (진차-소레나)’의 뜻을 아는가? 한국어의 ‘감사’를 가타카나로 표기한 ‘カムサ’(가무사)에 일본어로 ‘한다’라는 뜻의 ‘스루(する)’가 결합해서 감사하다, 라는 말이 되었다.
- ‘チンチャ(진차)’는 한국어의 ‘진짜’를 일본어로 표기한 것인데, 여기에 ‘그건 그렇지’ 정도로 번역되는 구어 표현 ‘それな (소레나)’가 붙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맞아, 맞아’, ‘정말 그렇지’라고 쿨하게 동조하는 관용구로 즐겨 사용된다.
- 일본의 젊은이들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반일과 혐한의 물결 속이지만, 한류의 힘으로 젊은이들의 언어가 한국어와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가깝지만 먼 일본과의 상생전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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