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경영대 채 준학장 삼일회계법인 EMBA 발전기금
SNUbiz창업 SNUBIZ Members
지난 ISSUE
지난 ISSUE
Insight/교수칼럼

은행의 사회적 역할과 뱅크런

은행의 사회적 역할과 뱅크런

2022년 노벨 경제학상은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필립 디빅 워싱턴대학 세인트루이스 경영대학원 교수, 그리고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3인에게 공동 수여되었다. 노벨상 위원회는 이들이 수행한 은행의 역할과 금융위기에 관한 연구를 선정 이유로 꼽았는데, 이 연구들은 2007-09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 및 올 초에 일어난 미국 지역 은행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여러 정책적인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최근의 노벨상 수상자 선정 경향은 특정 주제에 관해 연구자가 작성한 “일련의” 논문들의 공헌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이는 학문의 발달과 더불어 더 이상 “혁명적”인 단일 논문이 나오기가 어려워진 것이 이유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빅 교수는 다이아몬드 교수와 1983년에 공저한 “뱅크런, 예금 보험, 그리고 유동성”이라는 단 하나의 논문만으로 노벨상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은행의 사회적 역할 – 자금 만기의 변환

해당 논문은 은행이라는 기관이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관한 이론적인 고찰로 시작한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해서는 논자에 따라 여러 주장이 분분하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은행에 관해서는 이것이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근원적 욕망의 불일치에 주목한다. 기업이 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자금의 수요자는 단기 자금보다는 만기가 긴 장기 자금을 조달하여 사업이 결실을 보기 전에 자금난에 빠지는 사태를 피하고 싶어한다. 한편 자금을 공급하는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은 남는 돈이 있더라도 언제 다시 필요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장기로 빌려주는 것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기업은 장기 자금이 필요한 한편 개인 투자자는 단기 제공만을 고집하는 상황에서는, 중장기에 걸친 사업의 계획에 제약이 걸리게 되고 기업의 생산 활동에 차질이 생겨 사회적인 손실이 발생한다.

이 때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은행이 두 그룹 간의 중개자로서 등장한다. 은행은 개인의 잉여 자금을 “예금”이라는 형태로 수취하고, 예금자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자금을 돌려줄 것을 약속한다. 개인들 입장에서 이러한 요구불 예금은 유사시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으므로 만족스러운 형태의 계약이다. 한편 은행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든 예금자가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되어 동시에 예금의 인출을 요구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따라서 가령 평균적으로 전체 예금자의 10% 정도만 현금이 필요하게 되어 예금의 인출을 요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 수취한 자금 중 그에 상응하는 만큼만 현금으로 보유하고 나머지는 기업에 장기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된다. 이러한 단기로 자금 수취, 장기로 자금 제공이라는 “만기의 변환”을 통해 은행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형태의 자금 계약을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제공하며 기업 생산을 촉진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여 그 일부를 이윤으로 가져간다.

은행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적 취약점 – 뱅크런

그러나 이러한 단기 차입–장기 대출이라는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은 뱅크런이라는 필연적인 취약점을 수반한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이 다수의 예금자가 동시에 자금의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작다는 가정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은행 입장에서는 돌려줄 현금이 모자랄 수밖에 없어 유동성 부족에 의한 파산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아무리 건실한 은행이라도 일단 예금자들이 대거 몰려오면 살아남을 도리가 없다는 점인데, 이렇게 되면 예금자들 입장에서는 은행의 대출이 건전한지, 혹은 향후 수익을 창출할 여력이 충분한지 보다도 다른 예금자들이 어찌 행동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된다. 즉, 만일 남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은행으로 몰려간다면 그 은행은 결국 파산하고 남은 예금은 휴지 조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 역시 더 늦기 전에 내 돈을 찾아와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유를 막론하고 일부 예금자들이 자금 인출을 위해 은행으로 쇄도를 한다는 뉴스가 전해지면 이는 나머지 예금자들 사이에서 더욱 큰 패닉을 야기하고 그 경우 그간 사업을 잘 꾸려가고 있던 은행이라도 순식간에 부도를 맞이하게 된다.


뱅크런 방지를 위한 예금 보험과 모럴 해저드

다이아몬드와 디빅은 예금 보험의 도입을 통해 이러한 뱅크런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음을 보인다. 만일 내 예금의 가치가 보호되어 있다면 더 이상 남들이 예금을 인출하려 한다고 해서 딱히 내가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따라서 패닉이 전염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대공황 당시 많은 은행들이 뱅크런의 발생으로 인해 파산하였으나, 1933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설립 이후로는 그 빈도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예금 보험 제도는 은행의 모럴 해저드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기업이 과하게 위험한 투자를 하거나 자산의 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금융 시장에서의 자본 조달 비용 상승을 통해 이러한 경향이 억제되는데, 은행의 경우 부채(즉, 예금)의 가치를 정부가 보증해 주면서 이러한 시장의 규율이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은행들의 과도한 위험 추구라는 모럴 해저드를 야기하게 되었고, 은행 위기의 주요 발생 요인 또한 그간의 뱅크런에서 과도한 위험 추구로 인한 부실의 확산으로 변하게 되었다.

2023년 미국의 지역 은행 위기 이후 우리 나라에서도 예금 보험 한도의 재조정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 안정을 위한 은행 부채의 보호라는 측면에만 치우치다 보면 모럴 해저드로 인한 자산 위험의 증가라는 또 다른 부작용을 간과하게 될 수 있다. 공적 자금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두 측면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NEWSROOM 뉴스레터 신청

개인정보 수집, 이용 동의서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