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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교수칼럼

기업의 경품 번호표

기업의 경품 번호표

 

나는 경품 이벤트에서 당첨과는 인연이 없다. 경품 이벤트 때마다 번호표를 손에 꼭 쥐고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속으로 당첨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다가 빈손으로 행사장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설레며 기다릴 때가 있다. 학회에 참가했다가 일찍 떠난 지인들이 번호표를 주어, 일정 마지막에 있는 경품 이벤트에 내가 여러 장의 번호표를 손에 쥐고 있는 경우이다. 이럴 때는 실제로 뭐든 받아 들고 행사장을 나서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경품 행사는 참가자 입장에서 경품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의 편차 혹은 불확실성이 매우 큰 게임이다. 참가자 수에 비해 적게 준비된 값진 경품을 받았을 때는 참가자의 효용이 매우 높지만 받을 확률이 매우 낮고, 대부분은 경품 당첨이 안 되어 효용이 0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00명의 참가자가 있는 경품 행사에 10개 정도의 경품이 준비되어 있고 내가 한 장의 번호표를 가지고 있다면, 경품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0.1이고 이 확률은 나를 쉽게 설레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3명이 나에게 번호표를 주어, 내가 4장의 번호표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하나 이상의 경품을 받을 확률은 대략 0.35로 올라가고(대략이라고 한 것은 경품 추첨 규칙 등으로 확률이 다양하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아진 확률은 나를 충분히 설레게 할 수 있다.

오늘날 기업 환경은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특히 빠른 속도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이와 함께 시장의 고객이 원하는 가치도 변화한다. 기업에서 올해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언제 고객에게 외면받을지 모르고, 현재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내년에는 경쟁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밀려 실패한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이나 개인 대부분에게 미래의 불확실성이란 불안함 또는 두려움을 주는 요소일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 대처하기 위하여 기업들은 기능적 차원, 사업적 차원, 기업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본 칼럼에서는 구글의 사례와 함께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서 필요한 기업의 인수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두려움을 덜고 상대적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기업의 인수전략으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위 경품 행사 에피소드처럼 기업이 여러 개의 경품 번호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떨까? 많은 기업을 인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온 기업의 예로 구글을 들어보겠다. 구글은 2005년 이후 25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하였다. 한 해 평균 1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비용을 포함한 많은 위험 요소가 있다. 첫째, 인수 의사결정의 비가역적인 특성에서 오는 위험이 있다. 개인 소비자가 백화점에서 구매한 물건이 맘에 안 들면 반품할 수 있지만,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한 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 인수 후 피인수 기업을 살펴보니 인수 전 예상 및 평가와 매우 다르더라도 돌이킬 수 없다. 둘째, 인수 후 통합과정에 많은 장애 요인이 등장한다. 인력, 시스템, 자원 등 많은 부분의 통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인수 후 통합과정에서 인수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내부 직원들의 저항, 문화의 차이, 시스템 이질성과 같은 이유로 인수합병이 실패로 끝날 수 있다.



이와 같은 위험이 따르는 기업 인수 의사결정을 구글은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것일까? 2011년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2006년 구글은 창업한 지 1년여밖에 안 된 스타트업인 유튜브를 비싼 가격에 인수하였으나, 2011년 당시만 하더라도 유튜브가 구글 매출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했다. 그래서 필자는 내부적으로 꽤 많은 비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구글의 관리자에게 유튜브 인수의 내부적 평가에 관해 질문했다. 그 구글 관리자는 나의 기대와는 다른 의외의 대답을 했다. 물론 구글은 인수전략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여 기업 성장을 추구하지만, 개별 인수 건에 대한 비판은 지양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구글이 개별 인수 건에 대해 관대하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구글의 빠른 성장을 보면서 그 구글 매니저의 대답에 핵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글은 매력적인 경품 행사장을 찾아 그 행사의 경품 번호표를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은 경품 번호표 중에 매우 좋은 경품에 당첨된 대표적인 번호표들이 안드로이드와 유튜브이다. 안드로이드 기업은 구글이 2005년에 약 5천만 달러에 인수하였지만, 2016년에 이미 310억 달러의 매출(인수 가격의 약 620배), 220억 달러의 영업이익(인수 가격의 약 440배)을 달성하였다(출처: Bloomberg). 유튜브는 구글이 2006년에 약 16.5억 달러에 인수하였지만, 2022년 기준 약 300억 달러의 매출(인수 가격의 약 18배)로 구글 전체 광고 매출의 11.35%를 차지하고 있다(출처: Statista). 그야말로 구글은 다른 인수를 다 실패했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두 기업의 인수로 기업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구글도 모토로라 모빌리티와 같은 인수 실패 사례도 꽤 있으므로, 혹자는 구글이 피인수 기업 선택에 있어 더욱 신중히 해서 유튜브와 안드로이드 같은 기업만 인수했어야 한다고 주장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미래 경영환경이 불확실성이 없거나 아주 작을 때 유효하다. 1등 경품 번호를 정확히 예측하고 이 번호표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국내 기업들의 인수전략은 어떨까?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자 또는 임원들과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많은 국내 대기업은 특정 인수를 추진했던 임직원이나 팀이 그 인수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관리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별 인수 건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관리 체계에서는 인수를 추진하는 의사결정자는 사업성이 상당 부분 검증된 기업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품질이 검증된 좋은 제품은 그만큼 비싼 것이다. 인수 시장에서도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피인수 기업의 인수 건은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므로, 인수 후 구글과 안드로이드, 구글과 유튜브 사례처럼 경이로운 시너지를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국내 기업들도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인수 건들을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관리하는 인수전략을 가져야 한다(인수 포트폴리오 전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지만, 추가 설명이 필요하여 짧은 분량의 칼럼의 특성상 자제하겠다). 물론 위험 요소 중에는 기업의 분석으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므로 인수 의사결정에서 기업은 충분한 분석을 해야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요인들이 많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내부적인 분석을 통해 기업이 원하는 경품이 있고 당첨 확률이 높은 경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의사결정 담당자의 몫이다. 만약 기업에 필요하지 않은 경품들만 있는 경품 행사에 참석했다면,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경품이 있는 행사에 참여했는데 특정 번호가 당첨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담당 관리자나 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담당 관리자에게 여러 번호표를 가질 수 있는 재량을 주고, 그 담당 관리자가 진행한 인수 건들에 대해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에서 평가하는 것이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서는 더 합리적일 것이다. 안드로이드 창업자 중 한 명인 앤디 루빈이 가장 먼저 삼성을 찾아가 인수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한 후 구글이 인수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만약 당시 삼성의 기업 인수합병 관리 체계가 의사결정 담당자가 다수의 경품 번호표를 부담 없이 가질 수 있을 만큼 재량권을 가진 시스템이었다면, 최근 10여 년간 삼성전자와 구글이 보여준 성장 속도는 서로 뒤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경영환경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고 이와 함께 불확실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사람은 현재 상황에 대해 안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래에 발생할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심리학의 end-of-history illusion). 기업 차원에서도 10년 뒤 경영환경의 변화는 기업 대부분의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다.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은 기존 인수전략을 되짚어 보고 높은 불확실성에 맞는 전략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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