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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부엉이가 전하는 이야기

옥탑방 부엉이가 전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동문님.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경영대학 91학번 B반 120번 양지훈입니다. 학부 3학년 때 학내 혼성 합창단 연합 동아리 멤버들로 구성된 ‘인공위성’이란 아카펠라 그룹을 결성해 가수 활동을 하며 방송 맛을 보기도 했지만, 음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으로 대기업에 입사해 30대를 SK텔레콤, 제일기획, 네이버 등을 다니며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지냈습니다.

나이 마흔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겠다 작정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팝송 음반을 제작해 발표한 후 미국 일주 버스킹 로드트립을 했는데, 이 이야기가 블로그와 포털 미디어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죠. 급기야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미국을 달리다’라는 여행 책까지 내게 되었는데 이게 덜컥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덕분에, 팔자에 없던 여행작가의 호칭까지 붙게 되었고, EBS ‘세계테마기행(‘카리브제도’ 편)’에 큐레이터로 출연한 이후 각종 음악 여행 관련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간간이 초청되며 방송에 이따금 출연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양재동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는 독립음반 기획사 ‘로드뮤직’과 홍대 라이브 다이닝 펍 ‘옥탑방부엉이’를 함께 운영하면서 낮에는 음악 관련된 일을 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는 ‘주음야주’의 생활을 하는 중입니다.

 

 

학교 다닐 때 동문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일단 경영학 공부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수업은 학점 관리 차원 정도에서만 요령껏 임하며 학업보다는 동아리 활동과 연예 및 연애 활동에 전념했던, 전형적인 놀기 좋아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적절히 잘 관리한 학점과 전공 덕에 좋은 직장도 다닐 수 있었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는 2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지금의 아내도 만나고, 당시 운 좋게 찾아왔던 ‘가수’로서의 성공 경험은 현재 제가 열정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 음악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아주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R.O.I.가 꽤 괜찮았던 대학 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러다 보니 경영학부 생활 자체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은 편은 아닌데요. 경영대와 관련된 인상 깊은 추억은 오히려 졸업 이후가 더 많습니다. 우선 대학원을 졸업한 지 3년 뒤인 2001년에 경영대 뒤뜰 야외 공간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내를 학교에서 만나기도 했고, 대학원까지 다니며 오랫동안 생활했던 경영대에서 결혼식을 하면 뜻 깊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의뢰했는데, 당시 학장이셨던 조동성 교수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당일 경영대 건물을 찾은 하객들과 주변에 돌아다니던 학생들의 동선이 서로 얽히며 결혼식 분위기가 꽤 어수선했는데요. 심지어는 하객 수보다 훨씬 더 많은 뷔페 식사가 나갔다는 행사 기획사 측의 컴플레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신없이 결혼식이 진행되던 와중에 지나가던 학생들이 ‘이게 웬 공짜 음식이냐’ 하며 그냥 뷔페 줄에 서서 식사를 하셨나 봐요. 당시에는 황당했는데 돌이켜보니 경영대 후배들에게 결혼 기념으로 통 크게 한 턱 쏜 게 돼 버린, 꽤 괜찮은 해프닝이었던 셈이죠. 어쨌거나, 이래저래 학교도 정신없었던 한바탕 결혼식 소동 탓에, 경영대 뒤뜰에서의 결혼식은 저희가 전무후무한 유일 케이스로 남게 되었다고 해요.

또 한 번의 인상 깊은 추억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열린 ‘경영대인의 밤’ 행사에 동문 사회자로 2년 연속 초청받게 됐던 일입니다. 행사를 기획하셨던 분이 제 대학원 시절 논문 감수 교수셨던 이유재 학장님이었는데, 영광스럽게도 저를 기억하시고 불러 주셨던 것이죠. 당시 직장 수년 차 과장 시절, 피곤한 회사 생활에 나름 지쳐 있을 때였는데 덕분에 대학 생활과 결혼식의 추억이 듬뿍 어린 경영대 뒤뜰의 가설무대에 다시 올라 나름 ‘딴따라 출신’ 경영대 선배로서 후배들의 즐거운 잔칫날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행사 중간중간 경영대 학우들의 ‘장기 자랑’ 순서가 있었는데, 참여한 여학우 숫자가 수십 명이 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게 기억나네요. 저희 학부 때에는 240명 동기 중 여학우 숫자가 5명 정도에 불과했거든요. 그 때 마이크에다 대고 ‘아, 다시 시험 쳐서 입학하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라며 살짝 아재 개그를 날리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불과 10여 년 간의 격세지감이 느껴지던 인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지내다가 음악을 위해 큰 용기를 내셨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

네, 그럴 거예요. 아니, 오히려 후회가 있다면 조금 더 일찍 용기를 내지 못했던 점이죠. 하지만 거기에도 나름 이유가 있었으니까. 주변의 많은 분들이 대단한 결정이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사실 가능했던 이유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부부가 함께 맞벌이하며 언젠간 아이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저축도 하고 집도 장만해 가며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는데, 원하고 노력했던 아이가 오랫동안 생기지 않았죠.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이제는 더 이상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볼모 잡혀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더 늦기 전에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해보기 위해 직장을 떠난 겁니다. 만약 그 전에 아이가 생겼다면, 분명 아직까지도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을 거예요. 가족을 부양한다는 건 인간의 중요한 도리 중 하나니까요.

어쨌든, 결국 이렇게 살게 될 거였다면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일찍 시작할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만난 관계와 겪었던 여러 경험 또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다양한 활동과 비즈니스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니, 딱히 큰 후회는 없습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니까, 지금 이 순간을 있게 해 준 지난 모든 경험과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친구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죠.

 

식상한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카페 이름을 ‘옥탑방 부엉이’로 지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가게를 열고 나서 수십 번 넘게 받은 질문이지만, 기꺼이 말씀드리죠(웃음). 우선 ‘부엉이’는 제가 미국에서 음악을 할 때 별명이었어요. 영어로 부엉이(Owl)와 제 이름을 합성한 지훈아울(JihoonOwl)’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가게를 만들 당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던 집의 위치가 연남동에 있던 한 옥탑방이었고요. 가게 이름을 고민하며 옥탑방에서 생활하는 이런저런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는데, 한 친구가 어떤 포스팅에 농담조로 ‘이런 옥탑방 부엉이 같으니라고’ 라며 댓글을 남겼더랬죠. 근데 느낌이 괜찮았어요. 제가 별명을 부엉이로 짓게 된 이유도 부엉이가 가진 ‘세상을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며 질문을 받기 전에는 개입하지 않는 현자’의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이었고, 옥탑방이 왠지 그런 느낌과 잘 어울리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만들어진 ‘옥탑방 부엉이’라는 이름은 한편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철학도 담게 되었습니다. ‘공간 속에 공존하는 모두가 다 함께 자유로운 인디 문화 공간’을 추구하고 있고요. 자체 레시피로 준비한 요리와 엄선한 다양한 술들을 준비해 놓고서, 오시는 손님과 연주자분들이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상호 간 최소한 개입을 전제로 운영하고 있죠. 연주에 너무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님들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공연을 편하게 즐기실 수 있고요. 연주자들의 레퍼토리나 공연 진행 방식도 손님들이 너무 불편해하지 않을 범위 내의 공연 시간대, 창작곡과 커버 곡의 비율 등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 속에서 다양하고 자유롭게 본인 음악을 마음껏 연주하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의 삶이 매우 만족스럽고요. 더욱 더 많은 친구와 함께 최대한 건강하게 오랫동안 이 삶을 즐기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결국 내가 진정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열심히 할 때, 그 과정에서 함께 하는 분들도 행복해지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며 깨닫고 있는 요즘인지라, 욕심부리지 않고 꾸준히 그 과정을 차근차근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현재는 어려운 시국인지라 가게 운영은 버티는 과정 중에 있고요. 좋은 시절이 다시 오면 바다가 보이는 몇몇 장소에 이전 혹은 확장할 계획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팝송을 너무나 좋아해서, 비슷한 취향과 추억을 가진 분들을 만나보고 싶어 시작한 팟캐스트 ‘지훈아울의 20세기 팝송연대기’도 1년 넘게 매주 업데이트하고 있어요. 청취율과 구독자, 그리고 참여해주시는 게스트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요. 꾸준히 책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비슷한 행복을 느끼는 친구들을 새롭게 만나고 조금씩 늘려 나가는 과정이죠. 한 사람이 행복해져 가는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가 소소하게나마 공감하며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큰 보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 드립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딱지는 여전히 이 사회에서 특권층으로 여겨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졸업 후 회사, 혹은 다양한 거대 조직에 들어가면 더욱 실감 나게 되죠. 주요 요직에 선배들이 포진해 있을 거고요. 왠지 든든하게 여겨지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그 든든함에 너무 취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학연, 지연’이라는 배경은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 내에서만 작용하는 신기루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언젠가 조직을 떠나는 순간, 그동안 누리던 ‘특권 의식’은 아무 의미 없어지고요. 요즘처럼 ‘수평적 가치관’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바깥세상에서는 오히려 그게 큰 독이 되기도 합니다. 취한만큼 몸이 무거워지거든요. 나와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지요. 세상은 원래부터 평평했다는 것을. 어쩌면 그때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직을 떠나면, 남는 건 약간의 퇴직금과 그리고 친구입니다. 조직을 통해 만난 사람이 얼마나 친구로 남았는가를 가늠해 보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장사를 해 보는 겁니다. 든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동료나 선후배로서, 다시 한번 허심탄회하게 만나 인간적으로 술 한잔 함께 해보고 싶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면,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결국 가게를 찾아옵니다. 그때 비로소 진짜 친구가 되는 거죠.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최대한 친화력을 발휘해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회사는 받는 월급만큼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는 곳이지, 사교클럽은 아니니까요. 일은 잘 해야 합니다. 최고 학부의 자존심에 걸맞은 성과도 내야 하죠. 다만 항상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인지하고, 조직 내에서의 성공과 권력에 너무 도취하지 말고, 그저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에 부끄럽지 않은 독립적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항상 충실한 조직 생활을 하셨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쌓인 인간적 신뢰와 수평적 관계들은 조직을 떠난 이후, 어쩌면 진정 원하던 삶이 펼쳐질 여러분의 ‘인생 2막’이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꾸려지는 데 커다란 힘이 되거든요.

당부의 사설이 길었네요. 못다 드린 말씀이 혹시 궁금하시다면, 언제든 가게로 놀러 오세요. 술동무가 되어 안주거리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소개한대로 ‘주음야주’의 생활이 저의 일상인지라, 대부분의 저녁 시간에는 항상 가게를 오픈해 놓고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오실까 기대하며 기다리는 낙으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거든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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